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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통영예술의 향기, 제18주기 김용익 선생 추모제 봉행

기사작성 : 관리자 기사작성날짜 : 2013-04-11 (목) 19:30
글주소 : http://umz.kr/0E7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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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술의 펜이란 찬사를 얻으며 미국과 영국, 독일, 덴마크에 이르기까지 한국인 특유의 감수성을 주옥같은 영문 소설로 펼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에 위상을 떨친 재미 소설가 김용익 선생의 18주기 추모제가 11일 오전통영예술의 향기주관으로 봉행됐다.
 
2009년부터 시작된 선생의 추모제는 용남면 오촌 선영에서 봉행해 왔으나, 올해 추모제가 열린 곳은 김용익 선생이 형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과 유년을 보냈던 생가에서 봉행돼 특별한 뜻과 의미를 더했다.
 
50여 명의 추모객이 조촐하게 꾸민 국화 바구니를 놓고 마당에 둘러앉아 선생의 무용담을 소개하고,‘통영예술의 향기이지연 회장의 애절한 추모사에 이어 선생께서 통영시민상 수상 당시 통영시민에게 전했던 메시지가 생생한 육성으로 울려 퍼졌다.

이어 참석한 이들이 화답 하듯 돌아가면 선생의 작품 일부분을 윤독했고, 고이든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는 동안 두타사 불자들로 구성된 가릉빈가 합창단(단장 김행숙) 20여명이 선생께 헌가를 바쳐 추모제에 특별함을 더했다.

예술의 향기 이지연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외국 여러 나라가 선생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교과서에 실어 청소년의 교양 지침서로 삼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국내의 현실과 또 선생을 우리 고장의 자랑이라고 외치면서 지척에 묘소를 두고도 외면하며 살아온 10여 년의 세월이 부끄러웠다. 오늘 이후, 이곳 기념관은 통영문학의 위상과 자긍심을 심는 또 하나의 현장이 되리라고 굳게 믿기에 그동안의 미안함과 선생께 작은 위안을 드린다.”며 추모사를 남겼다.
 
이날 추모제가 더욱 뜻깊게 느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동안 통영예술의 향기는 통영예술인들의 발자취와 자료를 수집해왔다. 그러다 김용익 선생은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자료가 너무나 미흡했고, 공무원들은 수수방관하고 있음을 깨닫고, 선생의 흔적과 자료수집에 몰두해 왔다.

그 결과 유족들도 쉬쉬하며 공개하지 않았던 묘소를 수소문 끝에 찾아내 해마다 벌초를 하며 관리해 왔다. 아울러 세상에 단 한 장뿐일 것만 같았던 선생의 사진도 수 십 장 넘게 수집함은 물론, 선생에 관련한 논문과 작품들, 그리고 30분가량의 생생한 선생의 육성도 찾아냈다.

그런통영예술의 향기의 열정을 알게 된 유족들이 생가를 통영시에 기부하게 되었고, 그동안 통영예술의 향기가 수집한 자료들은 선생의 생가를 꾸미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누구나 타국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지만, 김용익 선생은 고국과 고향에 대한 애착심이 남달랐던 분이다.
 
선생은 그 애틋한 심정을 문학인의 책임감으로 소설로 만들었다. 그것도 전편을 영문으로 완성하여 서양인들이 동양의 정서를 알게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통영의 정서를 이해하게 했고, 그 소설들은마술의 펜이란 찬사를 얻으며 각국의 교과서에 실리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가 남긴 글들을 보면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다.“고국 하늘만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쇠똥에 빠졌던 고향의 그 골목길이 내 창작의 원천이다. 모든 예술가의 창작 시발점은 바로 고향에서 시작된다. 여행의 마지막 종점은 어릴 적 뛰놀던 고향 바로통영그곳이다." 라며 미국생활 중 고향 사랑을 표현했다.

한편, 그의 형인 김용식 전 외무장관은 두 번의 외무장관과 한 번의 국토통일원장관을 역임한 초기 한국외교계의 거목이며 한국 근대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는 일본 중앙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1948년에 처음 외교계로 발을 들여 놓은 뒤 15년 만인 1963년 외무장관에 올랐다.
 
이후 주유엔대사와 대통령 외교담당특보를 거치고 1971년 다시 외무장관이 되었다. 1974년에는 다시 국토통일원장관에 올랐고, 이후 주영대사와 주미대사를 거쳐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하다 1995331일 아우 김용익 선생 보다 40일가량 앞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역사는 나보다 내 동생을 더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동생의 이름으로 인해 나 이름도 거론될지 모른다.” 그의 생전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아울러 그들의 아버지는 초대 읍장을 지낸 김채호 옹이다. 두 아들이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예견했을까? 두 형제가 재회하듯 주전골 생가에는 나란히 영정이 걸렸고,‘김용식·김용식 기념관이란 이름을 달고 한국 역사의 교육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기념관은 17일 수요일 오후 3시 통영시 주관으로 정식 개관식을 하고 세상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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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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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용익 선생> 

 

추모제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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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2013-04-14 (일) 08:27
예술의 향기가 김용식.김용익 기념관 설립에 한 역활이 없다. 공식 개관도 하기 전에 가서 숟가락 부터  언져놓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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