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선생님,
통영을 사랑하고 통영그림을 많이 그린 사람 이태규,
운하교, 남망산, 공주섬, 망일봉, 동충, 강구안, 한산도, 수륙터, 도남동 쪽 풍경 통영 곳곳을 많이도 그리신 이태규 선생님.
풍경을 스케치 하면 보시는 시각이 역시 조형적이고 화가다운 천재적인기질이 있었다. 운하교 다리에 근경 안개가 자욱이 깔리고 착량묘를 중경, 남망산을 원경 처리하여 수려한 통영풍경을 화면 구성한 것은 천재적인 화가임은 틀림없었다.
나 역시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살아생전 선생님은 매일 그림을 그리셨고 끊임없는 작업을 하셨던 분이다.
때로는 담배를 피우고 가만히 있으면 가끔 선생님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선생님과 같이 이야기하고 우스웠던 수많은 기억 추억들이 생각난다.
살아생전 그림 관계 등등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가장 긴 시간을 같이 있었던 것으로 자부한다.
나를 괴롭히고 너무나도 나를 좋아하셨던 선생님이기에 나는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좋은 밝고 깨끗한 선생님이 좀 더 오래 살아계셨으면 수많은 걸작들을 남기셨을 것을 하고 말이다.
선생님 생각납니다.
어느 날 야외 스케치가자고 하여 먼 길 비포장도로를 택시 대절하여 갔는데 하늘에 구름 한 점 그리고 그만 가자고 한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 좀 더 그리고 가요 했더니 하늘 구름이 쉽게 그려지느냐 하고 그만 가자고 하였는데 그때 그리신 선생님 하늘 구름 한 점이 어떻게 그렇게 신비하고 잘 그렸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말하자면 구름 한 점 그리는 것 한수 가르쳐 주었으니 돌아가자 이 이야기인 것을...
그 대가로 빨리 술 생각이 난 것을 나는 빨리 눈치 채고 돌아온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밉지 않았고 순수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그리다 보면 그 진리를, 그 깊이를 알게 되리라는 높은 뜻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주 가시는 정종센타에서 술을 자시고 나서도 외상값도 주인에게 한두 번도 아니고 “아지매 달아나라” 하고 가게 밖을 나가도 주인아주머니는 어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밉기도 하지만 언젠가 지인 또는 제자 등등이 방문하여 외상값을 청산하는지라 별말 없이 외상처리 하는 것 이였다.
나 역시 선생님 외상 완납처리는 그 당시 봉급날로 거의 정해져 있었으니까
선생님 말소리는 음악이 있고 그림이 있고 문학이 있는 매력 있는 소리였습니다. 이글을 쓰면서 살아생전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셨던 고 설봉 설치윤 선생님도 생각이 납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전화로 “종근아 여기 말이다 동피랑 바위가 있는데 그 뒤 담배 가게가 있고 그 옆길로 전봇대가 있고 전봇대 뒷길로 고목나무가 있는데 그 집 뒤 이리저리 오른쪽으로 오너라”
하여 대충 추측하여 한참 끝에 찾아갔더니 시간은 밤 10시경 노파 할머니는 5촉짜리 등 아래 꾸벅 꾸벅 졸고 있고 막걸리 잔에 문어 한 마리 삶아 놓고 설봉 선생님과 일리아르 오딧세이가 어떻고 괴상한 전설 따라 삼천리 등 밤이 새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이야기 아니고 세상을 비판하는 이권적 이야기도 아닌 꿈같은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셨던 욕심 없고 순수하신 선생님.
선생님은 인상파 화가중 보드레 시슬레를 무척 좋아하셨다. 부드럽고 온화한 풍경을 좋아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수향(水鄕)이라는 100호 그림으로 국전에 입선을 하셨다.
근경에 웅장한 세병관이 있고 세병관 넘어 통영 강구안이 보이고 원경이 한산도가 보이는 바로 통영그림이다.
그림을 그리실 때에 선생님 얼굴표정이 떠오른다.
서울의 그 무시무시한 화단 속에 선생님은 몸을 던졌던 것으로 본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작품이 너무나도 좋았고 훌륭했다. 내가 본 선생님 그림 중에 걸작이었다고...
그러나 결과는 입선이였다. 선생님은 별말이 없었다. 그 후로 선생님은 국전에 출품치 않고 자기 작품에만 열중, 고향 풍경만 그리셨다.
선생님께서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한 예술세계의 큰 고통과 아픔을 자기 자신 속에서 술로서 이야기 하였으리라 믿는다.
나는 때로는 선생님이 왜 일찍 돌아가셨는지 가슴 아파 한다. 좀 더 살아서 후배들하고 이야기하고 좋은 작품의 에너지를 후배들에게 주시지 않고 왜 일찍 가셨는지 하고...
지금부터 15년 전 일이다. 어느 날 마산 동서화랑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화랑 송 회장께서 날보고 이 작품 한번 보라고 하여 작품을 보니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바로 용화사 명부전에 있는 사천왕 그림인 것이다. ‘태규’ 사인이 되어있었다.
나는 선생님 그림은 거의 다 알다시피 안다. 매일같이 집을 방문하기 때문에 작품 수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은 나는 본적도 그린 것도 본적이 없었다. 명부전 사천왕 그림을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께서 전시용으로 그린 것이 아닐 것이다.
무시무시한 지옥행 판결자 사천왕 그림을 누가 사가겠는가?
나는 생각에 잠겼다. 선생님께서는 이 그림을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그렸을 것이라고...
자신의 육신과 희미한 예술세계가 저물어져 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생님은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
그 오묘한 유화물감 색깔, 선생님의 특유한 붓터치, 나는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바로 이 그림은 매입하여 현재 소장하고 있어 항상 선생님의 영혼이 옆에 계신 것 같은 기분이다.
선생님!
선생님이 그렇게 많이 그리셨던 풍경 그림이 다 어디에 있는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가셔도 선생님이 그리시는 통영산천은 그대로 있습니다.
선생님!
시간이 흐르고 여건이 마련되는 대로 선생님을 사랑하는 물줄기 하나하나가 모여 언젠가는 선생님의 작품을 한데 모아 감상할 수 있는 추모기회를 마련하겠으며 통영예총 제 13호 예술지 발간 표지 그림에 즈음하여 삼가 제자 올립니다.
※ 통영미협에서 이태규 화백의 유작전을 준비 중입니다. 살아생전 가장 아끼고 촉망 받던 제자 정종근 미협고문님께서 귀한 추억담을 보내주셨습니다.